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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이준구칼럼] 영혼이 없는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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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8-09-02 08:17 조회2,88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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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칼럼] 영혼이 없는 존재 btn_print_03.gif
[한겨레신문] 2008년 09월 01일(월) 오후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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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서슬이 퍼렇던 시절 ‘공무원은 영혼이 없는 존재’라는 한 고위 관료의 말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무나 자조적인 말이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최소한의 자존심은 갖고 있어야 할 공직자가 그런 말을 서슴없이 내뱉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게 일반적인 정서였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그렇게 생각한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런 말을 하게 된 심정을 점차 이해하는 쪽으로 바뀌어 갔다. 정치가가 이래라저래라 하는 대로 따라가야 하는 것 그 자체도 무척 피곤한 일임에 틀림없다. 어디 그뿐인가? 열심히 일을 해도 정권이 바뀌면 열심히 일한 것 자체가 시비의 대상이 되는 판이다. 오죽 답답했으면 자신을 영혼이 없는 존재라고 비하했을까.

현 정부가 들어오면서 공무원의 입지는 과거보다 한층 더 좁아진 듯한 느낌이다. 공무원을 개혁의 동반자가 아니라 개혁의 대상으로 보는 것 같다고 느낄 때가 많다. 심지어는 정치가의 허물을 덮는 도구로 공무원을 이용하고 있다는 인상까지 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공무원의 사기가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쇠고기 파동만 해도 그렇다. 대통령이 초기 단계에서 솔직하게 사과하고 국민의 이해를 구했어도 사태가 그 정도로 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고 미적거리는 바람에 결국 방패막이로 나선 공무원들이 엄청난 고초를 겪어야 했다. 촛불 드라마에 등장한 수많은 영혼 없는 공무원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이번 여름의 유난스런 무더위를 공무원들은 냉방이 제대로 되지 않는 사무실에서 견뎌내야 했다. 공무원이 에너지 절감에 앞장서야 한다는 그럴듯한 명분 때문이었다. 민간부문에서는 2천원짜리 라면을 사먹는 사람도 냉방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그런데 나라를 위해 일하는 공무원들은 30도를 넘나드는 더위에서도 부채질로 비지땀을 식혀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난데없는 승용차 홀짝제 시행으로 많은 공무원들이 출퇴근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올림픽을 치른 중국을 빼놓고, 주요국에서 홀짝제란 과격한 규제로 고유가에 대처한 경우는 하나도 보지 못했다. 그렇게 상황이 급박하다면 전국적으로 홀짝제를 시행할 것이지 왜 공무원에게만 적용하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결국 만만한 공무원을 홀짝제 쇼의 엑스트라로 동원했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공무원들이 행동으로 에너지 절감에 앞장서야 한다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공무원에게 주어진 더욱 막중한 임무는 에너지 절감의 근본 대책을 마련하는 일이다. 부채질로 땀을 식히고 이틀에 한 번 차를 쓰지 않는 쇼는 진정으로 국민을 위하는 길이 아니다. 별 효과도 없는 전시성 정책에 공무원을 도구로 이용하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뒤늦게 대통령이 공무원 다독이기에 나섰으나 수사만 있을 뿐 알맹이는 없다. 아직도 문제의 핵심이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는 눈치다. 평범한 공무원의 진솔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려고 노력하지 않으니 상황 파악이 제대로 될 리 없다. 활짝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지 않는 한, 입 다물고 사는 데 익숙한 공무원의 진심을 알아내지 못한다.

물론 공무원들이 반성해야 할 점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공공부문의 혁신이 우리 사회의 주요한 현안 과제라는 데 한 점 이의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잘못된 것은 철저히 고치되, 쓸모없는 희생을 강요해 공무원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현명한 지도자라면 그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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