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우롱 말고 그냥 보수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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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오마이나르미 작성일07-02-12 10:35 조회6,06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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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도 형에게.
이게 무슨 악연인지 모르겠습니다. 2000년 초 형이 서울지하철노조 위원장으로 화려하게 부활한 직후, 우리는 월간 <말>지를 통해 서로 생각을 주고받은 적이 있습니다. 아니, 주고받았다기보다 형의 인터뷰를 접하고 내가 공박한 격이었으니 약간은 불공정한 게임이었다고나 할까요. 이번에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어쨌든 나는 그때 "그(배일도)는 이미 노동운동가가 아니다"라고 단정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형은 이미 오래전에 노동운동가가 걸어야 하는 '길고 험난한 길'에서 크게 벗어나버렸습니다. 그래서 한나라당 국회의원 이전에 벌써 '변절자'로 낙인이 찍혔을 겁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형은 처음부터 진정한 혹은 진짜 노동운동가가 아니었다는 것이죠. 따라서 형에겐 변절이니 뭐니 하는 말은 적절치 않습니다.
형은 처음부터 진정한 혹은 진짜 노동운동가가 아니었다
1990년, 서울지하철노조가 사면초가에 둘러싸여 있을 때입니다. 1989년 3·16파업으로 당시 위원장이던 (정)윤광(전 서울지하철노조 위원장)이 형은 해고된 상태로 감옥에 갇혀 있었고, 그것을 이유로 공사는 노조와의 교섭을 거부하며 노조를 더욱 질곡으로 내몰았습니다.
그러자 일부 간부들이 "정윤광을 끌어내리고 새 집행부를 선출하자"고 이른바 '펌프질'(무책임한 선동)을 해댔습니다. 파업 이후 약화된 지도집행력을 강화하기 위해 몇 번에 걸쳐 직무대행을 교체하면서 교섭을 촉구하고 나름대로 투쟁을 전개했으나, 가로막힌 벽은 더욱 높아만 갔습니다.
그 무렵입니다. 당시 나는 서울지역노동조합협의회(서노협) 조직국장이었고, 형은 전노협 중앙위원으로 대기업노조특별위원장을 맡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전노협 사무실 앞에서 우리 둘이 우연히 마주쳤습니다. 그리고 꽤 길게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때 나는 서울지하철노조 초대위원장이었던 형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역설했습니다.
나아가 그에 상응하는 역할을 요구했고, 그러기 위해서 형이 선결해야 할 개인적·조직적 결단, 어렵지만 숙명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와 해법까지 다 열거했습니다. 형의 대답은 시원하고 화끈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기대 이하였습니다. 용기가 없었거나, 비겁했거나, 혹은 속으로 '순진한 놈…'이라고 나를 비웃었거나….
1991년 출소한 윤광이 형의 정책 찬반투표가 부결됨으로써, 1년 반을 잘 버티던 지하철노조 파업의 정당성이 급격히 훼손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그러고는 곧 조합원을 설득하면서 조합원과 함께 가야 하는 옳고 곧은 길 대신 더 쉽고 치사한 길을 선택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집행부가 넘어갔습니다. 이른바 '비민주, 어요!'
그 후 1993년 그 집행부(위원장 강진도)는 조합원의 뜻을 거스르며 전횡을 휘두르다 세계 노동운동사에서 전무후무한 94.6%라는 불신임율로 심판을 받았습니다. 공사와 노동부의 탄탄한 보호를 받았는데도 말입니다.
형과 아무 관련 없는 이야기라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형은 94.6%의 불신임을 받아 물러났던 세력을 기반으로, 형이 서울지하철노조 언저리를 낭인처럼 떠돌 때 온갖 비판을 감수하고 형을 실질적으로 복권(1990년)시킨 사람들을 '파업을 위한 파업주의자'로 공격하면서 1999년 말 화려하게 부활했습니다.
물론 그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겠지요. 강약에 따라 기준과 행동이 달라지는 연약한 대중 심리를 악용하거나 그것에 편승해 기회를 잡는 능력 말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혹은 진짜 노동운동가가 할 짓은 못되지요.
아무튼 일도 형, 1989년 3·16파업 당시 서울시(시장 고건)를 상대로 내걸었던 3대 요구사항이 '① 배일도 전 위원장 석방 ② 합의각서 이행 ③ 김명년 사장 퇴진'이었다는 사실은 잊지 마십시오. 3대 요구는 전부 형과 무관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해, 무소신에 우유부단한 고건 시장의 무책임한 발뺌 때문에 200명이 넘는 부상자와 31명의 구속자, 수백 명의 해고·징계라는 초유의 사태를 불러왔다는 사실도 잊지 마시오. 훗날 형과 민선시장으로 되돌아온 고건이 돈독한(?) 노정파트너가 됐으니 시대가 변하긴 확실히 변한 것이로군요.
한나라당이 노동자의 희망이라고요?
<오마이뉴스> 기자에게 "한나라당이 더 현실적으로 노동자의 희망을 실현시킬 수 있다"고 말한 그 순간의 형 모습을 상상해봅니다. 필경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한 채 스스로 기만했으니 일고의 반박할 가치도 없습니다만, 오만도 아니고 궤변도 아니고….
그 말이 '말 같지 않은 말'이라는 사실은 누구보다도 한나라당이 더 잘 알 것입니다. 차라리, "진보운동을 했던 사람도 한나라당에 갈 수 있다"는 말과 그 변명은 눈 딱 감고 속아 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형은 처음부터 진보운동을 했던 사람도 아니었잖아요? 자본주의의 본질을 호도 말고, 한나라당의 정체를 포장하지 마세요.
시대가 변했으니 노동운동도 그 변화에 따라 '공존적 노사관계'를 추구해야 한다고요? 일견 그럴듯해 보이는군요. 운동의 대상 혹은 변혁의 대상이 변했다면 당연히 운동의 주체, 변혁의 주체도 변해야지요. 그런데 그 대상이 어떻게 변했느냐가 관건 아닙니까?
자본주의는 분명히 변했습니다. 특히 한국자본주의는 짧은 기간에 급격히 변했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노사가 상생 공존할 수 있도록 변한 건 아닙니다.
세계자본주의는 벌써 '근본적 존재위기'를 맞았습니다. 미국 등의 원조를 받으면서 개발독재로 성장한 한국자본주의도 세계자본주의의 중심부에 가까이 편입되면서 그 위기에 휩쓸렸습니다. 기존의 정책으로는 위기 탈출의 해법이 없습니다.
지구상에는 더 이상 개척할 식민지도 없고, 그렇다고 우주로 나갈 수도 없습니다. 물론 전쟁의 위협은 아직 엄존합니다. 어쨌든 싫든 좋든 지구상에서 해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인류가 존재하는 곳이라면 예외 없이 자유시장에 편입됩니다(자유화). 지구상 모든 시장을 초국적 자본의 지배 아래 복속시킵니다(세계화). 국민국가와 그 정부는 이제 초국적 자본의 관리집행부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노동시장 등을 완벽하게 유연화해야 합니다. 자유화, 세계화, 유연화는 현대자본주의의 절박하고도 비상한 마지막 수단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신자유주의 정책'이라 부릅니다.
자본주의 편에 서서 바라보면 신자유주의 정책 이외에는 더 이상 달리 해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노동계급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호소합니다. 그런데 그 협력은 유감스럽게도 노동자들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지위 향상과 질 높은 삶을 보장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현상을 유지할 수도 없습니다. 주머니 두툼해지는 자들과 피골이 점점 더 상접하는 군상들의 구분이 확연해지는 결과를 낳을 뿐입니다. 사회 양극화입니다.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면 협력이 아니라 '일방적 희생'이죠.
짝퉁 진보보다 우직한 보수가 용서된다
형이 즐겨 사용한 '상생 혹은 공존의 노사관계'는 신자유주의가 노동계급에게 양보할 수 있는 상한선입니다. 그리고 실제는 그렇게 양보할 수도 없습니다. 왜냐면 자본주의가 망하거든요. 그러니까 '상생, 공존' 속에 숨은 뜻은 우선 자본주의를 살리기 위해 노동자가 참을 수 있는 데까지 참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는 노동계급 처지에서 보면 양김 시대의 '고통분담론'보다 더 악질적인 자본주의자의 노사관입니다. 그러고 보니 형은 과거보다 훨씬 더 못된 보수주의자로 변했구려. 내가 역사가들이 훌륭하다고 소개하는 사람들을 모두 다 존경하지 못하는 이유는 형 같은 사람들 때문입니다.
형은 자유를 굉장한 가치로 생각하고, 스스로 "자유민주주의자인 것 같다"고 했는데 "어느 날 노동자가 자영업자가 될 수 있고, 빵가게가 성공하면 자유는 확대된다"는 말과 연결해서 보면 형은 확실히 자본주의자입니다. 더 정확하게는 신자유주의자입니다. 틀림없어요. 자본주의 세상에서 자유는 곧 돈과 비례하니까. 돈만 있으면 그야말로 살기 좋은 세상이 자본주의 세상 아닙니까.
일도 형, 앞뒤 안 맞는 궤변과 뻔한 거짓으로 순진한 노동자들 우롱하지 말고 그냥 솔직히 보수 하세요. 오락가락 얄팍한 '짝퉁 진보'보다 차라리 우직한 보수는 용서되거든요.
더 이상 노동운동은 집단적 힘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해서 안 된다는 일도 형, 이제 법치주의나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제도들이 갖춰졌기 때문에 현실 속에서 풀어나가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일도 형, 850만 명으로 급증한 비정규직노동자 수를 600만 명 미만으로 줄여 발표하는 노동부를 국회 환경노동위 위원으로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공무원노조특별법으로 헌법의 노동 3권을 스스로 부정한 국회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시나요? 비정규직노동자를 보호한다는 미명 아래 제정된 '비정규확대법'을 제정할 때 기분이 어땠습니까? 필수공익사업장 확대와 필수유지업무가 구체적으로 법제화되는 현실을 어떻게 보시나요? 장차 전 산업에 걸쳐 사실상 노동 3권을 대폭 축소·제약할 수 있는 노사관계로드맵은요?
노동자가 한나라당을 지지하고 한나라당과 함께하면 진짜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는 노사관계, 상생-공존의 노사관계가 형성될까요? 노태우가 군복을 벗었어도 군부독재정권이었듯이, 김영삼이 아무리 문민을 외쳐대도 자본가만을 대변·옹호한 반민주였듯이, 김대중이 노벨평화상을 받았어도 어느 정권보다 노동자를 많이 구속한 반노동자정권이었듯이, 노무현이 제아무리 참여의 문을 활짝 열었어도 초국적 자본의 치마폭을 벗어나지 못한 신자유주의정권이듯이 한나라당은 한나라당일 뿐입니다. 민정당에서 민자당으로, 민자당에서 신한국당으로, 신한국당에서 한나라당으로 간판만 바꿔온 '그 나물의 그 밥'입니다.
'아닌 것'에 대한 저항은 계속된다
일도 형, 마지막으로 충고 몇 마디 하겠습니다.
1987년 이래 우리나라의 노동운동은 자본의 토실토실한 허벅지에 빨대를 대고 자본의 피를 빨아먹으며 성장했습니다. 물론 그 피는 그 이전에 자본이 노동자의 몸에서 뽑아간 피입니다. 신자유주의로 불리는 오늘날의 체제는 자본의 온몸에 피가 마르자 노동운동도 함께 마르는 체제입니다. 분명히 조건과 환경이 변한 것이지요.
그렇다고 가뜩이나 부족하고 생명과 직결된 노동자(인간)의 피를 역사 속의 한 체제에 불과한 자본에게 뽑아줄 수는 없습니다. 해법을 못 찾아 결국 망하는 것이 역사적 숙명이라면 망해야지요. 다만 명을 다한 체제가 절로 넘어지느냐, 누군가에 의해 전복되느냐의 차이는 있겠지요.
카오스에서 먼 미래까지 세상은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체제 변화를 겪어왔고 겪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인류가 사라지지 않는 한 인간의 노동은 존재할 것입니다. 내일 일은 아무도 모릅니다. 오늘의 노동운동이 민중 속에 뿌리내리기는커녕 제 한 몸조차 주체하지 못해 비틀거려도 내일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노동운동을 기상 관측하듯 자연과학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큰 오산입니다. 노동운동은 '아닌 것에 대한 저항'을 본능적으로 지닌 더욱더 인간이고자 하는 인간의 운동이고, 인류 역사를 발전시켜온 원동력입니다.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 한 '아닌 것'에 대한 저항은 계속될 것입니다.
이게 무슨 악연인지 모르겠습니다. 2000년 초 형이 서울지하철노조 위원장으로 화려하게 부활한 직후, 우리는 월간 <말>지를 통해 서로 생각을 주고받은 적이 있습니다. 아니, 주고받았다기보다 형의 인터뷰를 접하고 내가 공박한 격이었으니 약간은 불공정한 게임이었다고나 할까요. 이번에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어쨌든 나는 그때 "그(배일도)는 이미 노동운동가가 아니다"라고 단정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형은 이미 오래전에 노동운동가가 걸어야 하는 '길고 험난한 길'에서 크게 벗어나버렸습니다. 그래서 한나라당 국회의원 이전에 벌써 '변절자'로 낙인이 찍혔을 겁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형은 처음부터 진정한 혹은 진짜 노동운동가가 아니었다는 것이죠. 따라서 형에겐 변절이니 뭐니 하는 말은 적절치 않습니다.
형은 처음부터 진정한 혹은 진짜 노동운동가가 아니었다
1990년, 서울지하철노조가 사면초가에 둘러싸여 있을 때입니다. 1989년 3·16파업으로 당시 위원장이던 (정)윤광(전 서울지하철노조 위원장)이 형은 해고된 상태로 감옥에 갇혀 있었고, 그것을 이유로 공사는 노조와의 교섭을 거부하며 노조를 더욱 질곡으로 내몰았습니다.
그러자 일부 간부들이 "정윤광을 끌어내리고 새 집행부를 선출하자"고 이른바 '펌프질'(무책임한 선동)을 해댔습니다. 파업 이후 약화된 지도집행력을 강화하기 위해 몇 번에 걸쳐 직무대행을 교체하면서 교섭을 촉구하고 나름대로 투쟁을 전개했으나, 가로막힌 벽은 더욱 높아만 갔습니다.
그 무렵입니다. 당시 나는 서울지역노동조합협의회(서노협) 조직국장이었고, 형은 전노협 중앙위원으로 대기업노조특별위원장을 맡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전노협 사무실 앞에서 우리 둘이 우연히 마주쳤습니다. 그리고 꽤 길게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때 나는 서울지하철노조 초대위원장이었던 형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역설했습니다.
나아가 그에 상응하는 역할을 요구했고, 그러기 위해서 형이 선결해야 할 개인적·조직적 결단, 어렵지만 숙명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와 해법까지 다 열거했습니다. 형의 대답은 시원하고 화끈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기대 이하였습니다. 용기가 없었거나, 비겁했거나, 혹은 속으로 '순진한 놈…'이라고 나를 비웃었거나….
1991년 출소한 윤광이 형의 정책 찬반투표가 부결됨으로써, 1년 반을 잘 버티던 지하철노조 파업의 정당성이 급격히 훼손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그러고는 곧 조합원을 설득하면서 조합원과 함께 가야 하는 옳고 곧은 길 대신 더 쉽고 치사한 길을 선택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집행부가 넘어갔습니다. 이른바 '비민주, 어요!'
그 후 1993년 그 집행부(위원장 강진도)는 조합원의 뜻을 거스르며 전횡을 휘두르다 세계 노동운동사에서 전무후무한 94.6%라는 불신임율로 심판을 받았습니다. 공사와 노동부의 탄탄한 보호를 받았는데도 말입니다.
형과 아무 관련 없는 이야기라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형은 94.6%의 불신임을 받아 물러났던 세력을 기반으로, 형이 서울지하철노조 언저리를 낭인처럼 떠돌 때 온갖 비판을 감수하고 형을 실질적으로 복권(1990년)시킨 사람들을 '파업을 위한 파업주의자'로 공격하면서 1999년 말 화려하게 부활했습니다.
물론 그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겠지요. 강약에 따라 기준과 행동이 달라지는 연약한 대중 심리를 악용하거나 그것에 편승해 기회를 잡는 능력 말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혹은 진짜 노동운동가가 할 짓은 못되지요.
아무튼 일도 형, 1989년 3·16파업 당시 서울시(시장 고건)를 상대로 내걸었던 3대 요구사항이 '① 배일도 전 위원장 석방 ② 합의각서 이행 ③ 김명년 사장 퇴진'이었다는 사실은 잊지 마십시오. 3대 요구는 전부 형과 무관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해, 무소신에 우유부단한 고건 시장의 무책임한 발뺌 때문에 200명이 넘는 부상자와 31명의 구속자, 수백 명의 해고·징계라는 초유의 사태를 불러왔다는 사실도 잊지 마시오. 훗날 형과 민선시장으로 되돌아온 고건이 돈독한(?) 노정파트너가 됐으니 시대가 변하긴 확실히 변한 것이로군요.
한나라당이 노동자의 희망이라고요?
<오마이뉴스> 기자에게 "한나라당이 더 현실적으로 노동자의 희망을 실현시킬 수 있다"고 말한 그 순간의 형 모습을 상상해봅니다. 필경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한 채 스스로 기만했으니 일고의 반박할 가치도 없습니다만, 오만도 아니고 궤변도 아니고….
그 말이 '말 같지 않은 말'이라는 사실은 누구보다도 한나라당이 더 잘 알 것입니다. 차라리, "진보운동을 했던 사람도 한나라당에 갈 수 있다"는 말과 그 변명은 눈 딱 감고 속아 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형은 처음부터 진보운동을 했던 사람도 아니었잖아요? 자본주의의 본질을 호도 말고, 한나라당의 정체를 포장하지 마세요.
시대가 변했으니 노동운동도 그 변화에 따라 '공존적 노사관계'를 추구해야 한다고요? 일견 그럴듯해 보이는군요. 운동의 대상 혹은 변혁의 대상이 변했다면 당연히 운동의 주체, 변혁의 주체도 변해야지요. 그런데 그 대상이 어떻게 변했느냐가 관건 아닙니까?
자본주의는 분명히 변했습니다. 특히 한국자본주의는 짧은 기간에 급격히 변했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노사가 상생 공존할 수 있도록 변한 건 아닙니다.
세계자본주의는 벌써 '근본적 존재위기'를 맞았습니다. 미국 등의 원조를 받으면서 개발독재로 성장한 한국자본주의도 세계자본주의의 중심부에 가까이 편입되면서 그 위기에 휩쓸렸습니다. 기존의 정책으로는 위기 탈출의 해법이 없습니다.
지구상에는 더 이상 개척할 식민지도 없고, 그렇다고 우주로 나갈 수도 없습니다. 물론 전쟁의 위협은 아직 엄존합니다. 어쨌든 싫든 좋든 지구상에서 해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인류가 존재하는 곳이라면 예외 없이 자유시장에 편입됩니다(자유화). 지구상 모든 시장을 초국적 자본의 지배 아래 복속시킵니다(세계화). 국민국가와 그 정부는 이제 초국적 자본의 관리집행부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노동시장 등을 완벽하게 유연화해야 합니다. 자유화, 세계화, 유연화는 현대자본주의의 절박하고도 비상한 마지막 수단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신자유주의 정책'이라 부릅니다.
자본주의 편에 서서 바라보면 신자유주의 정책 이외에는 더 이상 달리 해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노동계급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호소합니다. 그런데 그 협력은 유감스럽게도 노동자들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지위 향상과 질 높은 삶을 보장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현상을 유지할 수도 없습니다. 주머니 두툼해지는 자들과 피골이 점점 더 상접하는 군상들의 구분이 확연해지는 결과를 낳을 뿐입니다. 사회 양극화입니다.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면 협력이 아니라 '일방적 희생'이죠.
▲ 지난해 5월 14대 서울지하철노조위원장 취임식에 참석한 배일도 한나라당 의원. 배 의원은 1987년 서울지하철노조를 처음으로 결성한 뒤 해고됐다가 1998년 복직해 세 차례나 노조위원장을 지냈다. |
ⓒ2007 배일도 의원 홈페이지 |
짝퉁 진보보다 우직한 보수가 용서된다
형이 즐겨 사용한 '상생 혹은 공존의 노사관계'는 신자유주의가 노동계급에게 양보할 수 있는 상한선입니다. 그리고 실제는 그렇게 양보할 수도 없습니다. 왜냐면 자본주의가 망하거든요. 그러니까 '상생, 공존' 속에 숨은 뜻은 우선 자본주의를 살리기 위해 노동자가 참을 수 있는 데까지 참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는 노동계급 처지에서 보면 양김 시대의 '고통분담론'보다 더 악질적인 자본주의자의 노사관입니다. 그러고 보니 형은 과거보다 훨씬 더 못된 보수주의자로 변했구려. 내가 역사가들이 훌륭하다고 소개하는 사람들을 모두 다 존경하지 못하는 이유는 형 같은 사람들 때문입니다.
형은 자유를 굉장한 가치로 생각하고, 스스로 "자유민주주의자인 것 같다"고 했는데 "어느 날 노동자가 자영업자가 될 수 있고, 빵가게가 성공하면 자유는 확대된다"는 말과 연결해서 보면 형은 확실히 자본주의자입니다. 더 정확하게는 신자유주의자입니다. 틀림없어요. 자본주의 세상에서 자유는 곧 돈과 비례하니까. 돈만 있으면 그야말로 살기 좋은 세상이 자본주의 세상 아닙니까.
일도 형, 앞뒤 안 맞는 궤변과 뻔한 거짓으로 순진한 노동자들 우롱하지 말고 그냥 솔직히 보수 하세요. 오락가락 얄팍한 '짝퉁 진보'보다 차라리 우직한 보수는 용서되거든요.
더 이상 노동운동은 집단적 힘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해서 안 된다는 일도 형, 이제 법치주의나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제도들이 갖춰졌기 때문에 현실 속에서 풀어나가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일도 형, 850만 명으로 급증한 비정규직노동자 수를 600만 명 미만으로 줄여 발표하는 노동부를 국회 환경노동위 위원으로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공무원노조특별법으로 헌법의 노동 3권을 스스로 부정한 국회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시나요? 비정규직노동자를 보호한다는 미명 아래 제정된 '비정규확대법'을 제정할 때 기분이 어땠습니까? 필수공익사업장 확대와 필수유지업무가 구체적으로 법제화되는 현실을 어떻게 보시나요? 장차 전 산업에 걸쳐 사실상 노동 3권을 대폭 축소·제약할 수 있는 노사관계로드맵은요?
노동자가 한나라당을 지지하고 한나라당과 함께하면 진짜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는 노사관계, 상생-공존의 노사관계가 형성될까요? 노태우가 군복을 벗었어도 군부독재정권이었듯이, 김영삼이 아무리 문민을 외쳐대도 자본가만을 대변·옹호한 반민주였듯이, 김대중이 노벨평화상을 받았어도 어느 정권보다 노동자를 많이 구속한 반노동자정권이었듯이, 노무현이 제아무리 참여의 문을 활짝 열었어도 초국적 자본의 치마폭을 벗어나지 못한 신자유주의정권이듯이 한나라당은 한나라당일 뿐입니다. 민정당에서 민자당으로, 민자당에서 신한국당으로, 신한국당에서 한나라당으로 간판만 바꿔온 '그 나물의 그 밥'입니다.
'아닌 것'에 대한 저항은 계속된다
일도 형, 마지막으로 충고 몇 마디 하겠습니다.
1987년 이래 우리나라의 노동운동은 자본의 토실토실한 허벅지에 빨대를 대고 자본의 피를 빨아먹으며 성장했습니다. 물론 그 피는 그 이전에 자본이 노동자의 몸에서 뽑아간 피입니다. 신자유주의로 불리는 오늘날의 체제는 자본의 온몸에 피가 마르자 노동운동도 함께 마르는 체제입니다. 분명히 조건과 환경이 변한 것이지요.
▲ 임성규 전국공공운수연맹 상임위원장. | |
ⓒ2007 참세상 |
카오스에서 먼 미래까지 세상은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체제 변화를 겪어왔고 겪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인류가 사라지지 않는 한 인간의 노동은 존재할 것입니다. 내일 일은 아무도 모릅니다. 오늘의 노동운동이 민중 속에 뿌리내리기는커녕 제 한 몸조차 주체하지 못해 비틀거려도 내일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노동운동을 기상 관측하듯 자연과학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큰 오산입니다. 노동운동은 '아닌 것에 대한 저항'을 본능적으로 지닌 더욱더 인간이고자 하는 인간의 운동이고, 인류 역사를 발전시켜온 원동력입니다.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 한 '아닌 것'에 대한 저항은 계속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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