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의 어느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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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펌이오 작성일07-09-19 09:28 조회3,27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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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섭 건설교통부 장관 “직업이 장관이냐?”는 말을 들을 때가 있다. 묻는 사람마다 의도가 조금씩 다른 것을 느끼곤 한다. 자만하지 말고 잘 하라는 진심어린 당부의 간접화법이거나 아니면 잘 나가니 좋겠다는 은유적 비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의도이건 그 질문은 “나는 내 직책을 사심 없이 잘 수행하고 있는가?”하고 자신을 되돌아보게 해주는 화두가 되어 주어서 고맙게 받아들이고 있다. 권위주의 시대의 장관직과 지금의 장관직은 매우 다르다. 당연히 달라야 하고 많은 분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겠지만, 실제는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업무량이 많고 책임은 막중하다. 또 어렵고 힘든 일에는 앞장서서 본을 보여야 하는 위치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초기 로마시대에 사회적 지도층들이 보여 준 투철한 도덕적 의무와 솔선수범의 정신에서 비롯된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를 실천해야 하는 ‘헌신, 봉사, 절제’의 자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을 보면 지금도 장관직에 대해 뭔가 혜택이 많고 화려한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말 한마디면 아무리 어려운 일도 해결된다는 선입견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문득, 장관이 하는 일에 대해 알고 싶은 분들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또 정확하게 알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장관이 하는 일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해보고 싶다는 마음에서 비교적 바빴던 어제(9월 7일, 금요일) 하루 일정을 시간대 별로 정리해보았다. AM 5:50 / 하루를 열며, 아내 생각에 가슴 ‘뭉클’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휴대폰 모닝콜 소리와 함께 5시 50분에 일어났다. 이미 습관이 되었다. 예전에는 5시 30분에 일어나 1시간 정도 아침운동을 한 뒤에 출근했다. 그런데 건설교통부에 온 뒤로는 아침 회의가 많고 취침 시간이 불규칙해져서 아침운동을 못하는 대신 기상 시간을 늦추었다. 오늘따라 모닝콜 소리에도 한참이나 뒤척이다 일어나는 아내의 몸동작이 왠지 무거워 보인다. 밥이 보약이니 아침은 꼭 먹고 출근해야 된다는 것이 아내의 지론이다. 그런데 오십 중반을 목전에 두면서 아내의 건강이 예전 같지 않다. 어느덧 30년을 채워가는 결혼생활이다. 시골 가난한 농가의 맏며느리, 그것도 7대 종손 장남 아내로서 고충이 많았다. 공직자 남편 덕에 절제의 생활을 감내해야 했고, 남들이 다 가는 해외여행 한 번 못 다녀온 아내의 삶에 괜스레 가슴이 뭉클하다. “오늘은 아침을 먹으면서 하는 회의니까 식사 준비는 안 해도 돼요!” 이럴 땐 조찬을 겸한 회의가 오히려 고맙다. 안쓰러워하는 마음이 통한 것일까, “일찍 주무시라니깐 늦게까지 일하더니만…” 세수하는데 등 뒤에서 들려오는 아내의 목소리다. 생각해보니, 어젠 임대주택법을 비롯해 시급한 법안들 처리 협조를 부탁하느라 몇 분 의원들과 식사하고 늦게 귀가했는데, 밀린 결재와 오늘 회의 자료를 검토하느라 자정을 훨씬 넘겨서야 잠을 청했었다. AM 6:40/ 집을 나서다 7시 30분에 국회 귀빈식당에서 대통합민주신당과 정책협의회가 있다. 집이 송파구 가락동 서울의 동쪽 끝이라 국회까지 가려면 좀 서둘러야 한다. 차안에서 조간신문을 살펴보니 지방 미분양 아파트가 급격히 늘어간다는 기사가 얼른 눈에 들어온다. ‘금년 1.11대책 발표 후 수도권 주택시장은 확연하게 안정세를 보이고 있으나, 지방은 주택경기가 냉각되고 건설업체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의 지나친 규제 때문에 미분양이 외환위기 수준으로 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사실 미분양의 원인을 따지자면, 급변하는 시장 변화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채 수요를 감안하지 않고 집을 지었거나 구매력보다 높은 집값을 책정한 업체의 탓도 적지 않다. 그러나 장관이 내놓고 그런 얘기를 할 수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책임이 누구에게 있든지 간에, 또 아무리 어렵더라도 해법을 찾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고 공직자의 책무이다. 지난 4월 지방건설업체 지원 대책을 강구하는 등 꾸준히 노력하고 있지만, 추가적인 지원방안 마련에 속도를 내도록 직원들에게 주문해야겠다. 차창 밖으로 한강을 바라보며 잠시 심호흡을 해본다. AM 07:16 / 국회 복도, 10분 걷기로 부족한 운동량 보충 서둘러 온 덕에 10분 정도 시간이 남았다. 성인병 예방에 걷는 것보다 더 좋은 운동이 없다는데, 요즘 부쩍 운동량이 부족하다. 잠깐이라도 틈이 나면 걸어야한다. 복도를 왕복하며 걸었다. 지나치는 사람들이 힐끗 쳐다본다. 10여분을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돌고 나니 땀이 밴다. 많은 일정을 소화해내고 맑은 판단력을 유지하려면 건강이 필수다. 아무리 좋은 정책과 아이디어가 있어도 건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열정적으로 추진하기 어렵다는 생각에, 짧은 복도지만 두어 번 더 돌았다. AM 07:30 / 조찬을 겸한 정책협의회 대통합민주신당과 정책협의회. 시급히 처리되어야 할 우리 부 소관 법률인 ‘임대주택법’, ‘서남권 특별법’, ‘건축기본법’에 대해 설명하고 이번 정기국회에서 통과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임대주택법’은 지난 1.31대책에 따라 추진 중인 비축용 임대주택사업과 임대주택펀드 조성 등을 원활히 시행하기 위해 이번 회기에는 반드시 통과되어야 한다. 서민들의 주거문제 해결과 주택시장 안정을 위한 시급한 민생법안인데도 벌써 5개월째 국회에 붙들려있어 안타깝다. “이제는 여당이 아니다. 사안에 따라서는 야당보다 더 맹렬하게 비판하겠다”는 원내대표의 얘기가 들려온다. 정부가 법안을 만들어 보내놓으면 여당이 알아서 도와주던 옛날과는 국회사정도 영 달라졌다. 17대 마지막인 이번 정기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으면 폐기되어 버리므로 민생법안 통과가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순탄치 않을 법안 통과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회의가 예상보다 길어졌다. AM 09:20 / 국회에서 늦게 출발, 길이 막혀 마음은 조급해지고… 10시 과천청사에서 열릴 예정인 주택정책심의위원회 생각으로 마음이 급해진다. 민간 위원들도 참석하는데 회의 주재자인 내가 늦으면 예의가 아니다. 회의 시간 하나 지키지 못한다면 달라진 공직 사회의 변화를 느끼게 할 수 없다. 약속을 정확히 지키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왔기에 이런 일이 생길 경우엔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9시 20분이 되어 회의가 끝났다. 급히 차에 몸을 실었지만, 이번엔 교통 사정이 말이 아니다. 이대로라면 10시 이전 도착이 어렵다. 시내 교통은 서울시 소관이라지만, 교통 정책을 총괄하는 장관으로서의 책임이 크다. 길이 막혀 회의시간에 늦었다는 것은 아무래도 건교부장관이 할 말이 아니다. 국민들 중에는 이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일들이 많을 텐데 차가 막혀서 불이익을 보지 않을까 생각하니 죄송하고 마음이 무겁다. AM 10:05 / 주택정책심의위원회, 어려움을 정책 탓으로만 돌려 ‘안타까움’ 과천청사에 회의 시간보다 5분 늦게 도착했다. 양치할 겨를도 없이 화장실만 들렀다가 회의장으로 갔다. 참, 어제 밤에 회의 자료를 미리 챙겨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주요 안건은 ‘주택거래신고지역 지정안’과 ‘지방 투기과열지구 조정안’이다. 돌이켜보면, 주택시장 안정에 주력한 결과 세제나 금융 측면에서 투기 수요를 철저히 억제해왔고, 이 달부터 시행에 들어간 분양가상한제와 청약가점제로 시장의 안정 기반은 점차 확고해지고 있다. 수급 차원에서도 균형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수도권 실수요 추정치 30만호보다 훨씬 많은 연평균 37만4000호가 금년부터 2010년까지 공급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방 주택시장은 사정이 다르다. 미분양이 급증하고 일부 중소건설업체의 도산 위험도 증가하고 있다. 원칙과 기준을 지키는 한도 내에서 수도권과 지방에 대한 차별화된 접근이 필요하다. 오늘 안건은 이런 정책 방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개발호재로 집값 불안이 우려되는 수도권의 일부 지역은 주택거래 신고지역으로 지정하는 한편, 지방에 지정되어 있는 투기과열지구 중에서 투기 우려가 없는 11개 시·군·구를 제외하였다. 주택정책심의위원회가 열리는 모습. 건교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재경·행자·산자부 등 13개 부처 차관, 민간 전문가 등 총 20인으로 구성된다. 회의 참석 지자체 중, 투기과열지구 해제 대상에서 제외되어서 내심 불만스러운 눈치가 보인다. 하지만 지방의 주택시장이 어렵다고 해도 전염성, 이동성, 집중성이 높은 투기 자금의 성격상 테마가 있으면 투기의 열풍에 휩쓸릴 수 있는 지역은 해제할 수 없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 국민들이 보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다만 지방 건설업체의 어려움을 덜어줄 수 있도록 별도의 지원 대책을 강구하도록 지시하였다. 언론에서는 이번 해제조치를 두고 뒷북행정이라느니 지방건설업체의 어려움을 외면하고 있다느니 하는 비판이 쏟아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건설업체도 시장의 변화를 정확히 예측하고 구매력이 감당할 수 있는 합리적인 수준의 값싼 주택을 건설하는 경영 능력이 필요하다. 그런데도 모든 책임을 주택시장 안정을 위해 취한 각종 조치의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마음이 아프다. 부작용이 없는 약이 없는 것처럼 아무리 좋은 대책도 옥에 티처럼 흠이 따르기 마련이다. 긍정적 효과에 비해 부작용이 미미하다면 좋은 정책으로 평가를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부동산 투기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 않을까. 시장에서는 다양한 이해관계와 입장들이 얽혀 서로 경쟁한다. 따라서 시장 구성원 모두를 만족시키는 정책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시장의 전환기인 현 상황에서는 정책 운용의 묘를 십분 살려 피해를 보는 사람들을 최소화해야 되겠지만 큰 방향은 국민 다수의 이익을 위해, 공공의 가치를 위해 일관되고 불편부당한 정책과 룰을 설계하고 운용하는 일이다. 시장의 다수가 납득하고 따라줄 수 있도록 신뢰성을 얻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AM 11:20 / 주한 외국대사들과의 오찬 장소로 이동 주택정책심의위원회를 마치자마자 오찬 장소로 가야할 시간이다. 오늘은 조금 특별한 오찬이다. 8개국 주한 외국대사들과의 만남이다. 우리나라가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이사국에 선출될 수 있도록 회원국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어렵게 초청한 자리다. 그들 8개국은 우리나라에 대한 지지를 유보하거나 소극적인 입장을 밝혔기 때문에 그리 쉽게 우리를 지지할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항공외교에서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으려면 최선을 다한 설득이 필요하다. 막 출발하려는데 급한 보고가 있다고 한다. 두어 가지 보고를 받고나니 시간이 부족하다. 국제적인 결례를 하지 않아야 한다. 나머지 보고는 업무관리시스템을 통해 밤에 집에서 결재하겠다고 약속하고 청사를 나섰다. 오찬 장소인 메리어트 호텔까지는 30분도 남지 않았다. 기사에게 다시 재촉했다. 어떻게 말을 해야 대사들에게 설득력이 있을까 궁리하다보니 어느새 오찬 장소에 차가 멈춘다. PM 12:00 / 8개국 대사들, 설득 끝에 약속과 긍정적 반응으로 전환 핀란드, 남아공, 알제리, 터키, 스웨덴, 콜롬비아, 헝가리, 온두라스 등 8개국 주한대사가 초청에 응했다. 초청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설득하느냐가 관건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1년 9월에 처음으로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이사국으로 선출되어 지금까지 두 차례 연임했고, 이번이 세 번째 도전이다. 이사국이 되면 항공 관련 국제규정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함으로써 우리나라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항공외교 무대에서 주도권을 가질 수 있다. 실제로 지난 2001년 8월 항공안전 2등급 국가로 강등되는 수모를 겪었는데, 그해 말에 1등급으로 복귀했었다. 핀란드 등 8개국 대사들과 오찬 장면. 처음에는 우리나라의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이사국 선출에 유보적이었지만, 나중에는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우선 대사들에게 우리나라가 세계 8번째 항공운송국이자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분담금도 8번째로 많이 내는 국가라는 점을 강조했다. 아울러 화물운송 세계 2위, 승객 운송 세계 10위의 인천공항을 운영하고 있는 나라로서 36개국에 돌아가는 이사국 지위를 얻지 못한다면 국제항공 발전에도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점을 역설했다. 예상대로 처음에는 유보적인 분위기였지만, 결국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하거나 본국에 전하겠다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이사국 선임 안정권에 들려면 170여 투표 국가 가운데 120개 국가의 지지가 필요하다. 현재 확실하게 지지를 표명한 국가는 이 숫자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오는 9월 25일 선거가 있을 몬트리올을 방문해 더욱 적극적으로 활동하면 결과가 더 확실할 텐데 국회 일정상 갈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PM 1:25 / 김포공항으로 출발, 닦아야 할 ‘길’은 많은데 돈은 적고… 유보적 태도의 대사들 설득에 예상보다 시간이 지연되었다. 이제 김포공항으로 가야 한다. 10년 9개월에 걸쳐 완공된 국도22호선 영광~광주 간 4차로 개통식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개통으로 영광에서 광주까지 45분에서 15분으로 소요시간이 단축되고, 향후 10년간 약 2천3백억 원의 물류비용이 절감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가 공기처럼 당연하다고 느껴서 그렇지 ‘길’은 물자만 이동하지 않고 사람들의 삶과 마음도 함께 이동한다. 사람과 사람, 지역과 지역을 이어주는 소통의 동맥이자 지역의 경제와 문화가 발전하도록 돕는 소중한 자산이다. 그러나 정부의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여력이 점차로 줄어들면서 완공에 걸리는 시간이 길어지고, 시공업체의 경영난은 물론 지역 주민들의 숙원을 빨리 해결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 투자 재원을 보다 효율적으로 투입할 수 있도록 외부 부탁에 흔들리지 않고 우선순위에 따라 사업을 착공하고, 새로운 착공보다는 이미 시행중인 공사를 완공하는 데 주력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추가적 예산 확보를 위해 기획예산처 장관에게 다시 한 번 협조를 요청해야겠다. PM 2:30 / 김포공항, 아름다운 산하 내려다보며 책임감 느껴 비행기에 오르니 2시 30분. 이륙하자 무거웠던 마음이 다소나마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어제까지 잔뜩 찌푸렸던 날씨도 화창해졌다. 여름 내내 집중호우로 피해가 없을까 노심초사했던 날들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건설교통 업무는 도로, 철도, 항공, 주택 등 국민생활과 밀접하지 않은 분야가 없다. 비가 내릴 때마다 상황실에서 밤샘을 하며 실시간으로 보고를 해준 직원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따로 시간을 내어 격려를 해주자고 수첩에 메모해 둔다. 청명한 날씨 덕분인가, 하늘에서 내려다본 강산이 오늘따라 한층 아름답다. 안 그래도 좁은 국토인데 수도권으로만 몰려들어 그나마 좁은 땅을 더욱 좁게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 너무 안타깝다. 수도권은 꽉 차서, 지방은 텅 비어서 경쟁력이 없다. 수도권은 비우고 지방은 채워서 상생해야 한다. 세종 행정중심복합도시, 혁신도시, 기업도시 등 참여정부 들어 균형발전의 패러다임을 만들기 위한 사업들을 의욕적으로 추진해왔지만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사업들이 착공되어 시동을 걸고 있지만 참여정부 이후에도 국토균형발전 사업들이 차질 없이 이어질 수 있도록 튼튼한 토대를 만들어놓는 것이 내게 주어진 또 하나의 책임이라는 생각에 다시 머리가 무거워진다. 하늘과 땅, 어느 곳을 쳐다봐도 모두 건설교통 업무와 관련되니… PM 3:25/ 광주공항 도착, 아련한 향수와 함께 개통식 현장으로 이동 공항에 내렸다. 순간 잊었던 고향에 대한 아련한 향수, 그리움이 밀려온다. 풍경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바람은 어떤 내음을 머금고 있을까. 공항 밖으로 나오니 마음이 설렌다. 고향 땅에서 어머니 품을 느끼는 것은 오십을 훨씬 넘은 이 나이에도 여전하다. 꿈 많은 청년 시절을 보낸 곳이니 아니 그럴까. 행사장으로 가는 차안에서 바라보는 밖의 풍경은 많이 달라졌지만 옛정에 젖어들기에는 충분했다. 오늘 개통식을 하는 길은 대학시절 고향인 함평 향교에서 대학교까지 달마다 한 차례씩 오갈 때의 길이라서 감회가 더 깊은지 모른다. 물론 오늘은 개인이 아닌 도로를 관장하는 주무부처 장관으로 행사에 참석하는 것이지만, 고향이라 애정이 더 가고 가슴 설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수구초심의 보편적 심정인가 보다. 어서 가서, 10년이 넘는 오랜 공사기간 동안 불편이 많았을 텐데 잘 참고 협조해준 주민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1년 365일 현장에서 땀 흘려 준 공사 관계자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와 격려의 악수를 하고 싶다. 기반시설이 충분하지 않은 지역일수록 주민들은 도로 하나 놓인 것이 얼마나 힘이 되고 희망이 될까. 무엇보다 내년 개최되는 ‘함평 세계나비·곤충엑스포’ 기간의 교통소통에 큰 도움이 될 것이고, 영광굴비 등 특산물 수송이 원활해져 지역 경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지역 경제는 곧 나라 경제가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니 뿌듯한 보람이 다가온다. 차는 어느 새 행사장에 도착했다. PM 4:00/ 도로 개통식 현장, “균형발전의 절실함, 가슴으로 느껴” 참석한 지역민들의 표정을 행사 내내 살펴보는 동안 이 분들의 소망은 소박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추처럼 매운 세월 살아온 삶의 터전인 이 지역에서 나름대로 여생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여건을 소원하리라. 수도권은 꽉 차고 지방은 텅 비어가는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참여정부가 국토균형발전에 매달리는 이유도 이러한 소망에 부응하기 위해서다. 과거 정부에서도 균형발전을 얘기했지만 그것은 인구와 기업의 수도권 집중화를 해소하기 어려운, 소극적인 입지 규제에 머물렀고 당연히 효과가 적었다. 국도22호선 영광~광주 국도 개통식 모습. 기반시설이 충분하지 않은 지역일수록 주민들은 도로 하나 놓인 것에 큰 힘을 얻는다. 이날 국토균형발전의 절실함이 ‘논리’보다는 ‘가슴’으로 느껴졌다. 참여정부가 하고자하는 균형발전은 일부 언론에서 비판하는 것처럼 “수도권의 경쟁력을 떨어뜨려서 지방의 경쟁력을 높이려는 것”이 결코 아니다. 비대한 수도권은 비워서 더 가치 있는 것으로 채우고, 텅 빈 지방에는 ‘마중물’(calling water) 역할을 할 행정중심복합도시, 혁신도시, 기업도시를 건설해 지역별로 특화된 전략산업을 육성하여 살기 좋고 사업하기 좋은 지역으로 만들어가자는 것이다. “수도권도 살리고 지방도 살리자”는 것이 참여정부의 균형발전 전략이다. 21㎞ 국도 완공 하나에 이처럼 고마워하는 이곳 주민들을 보면서 오늘은 균형발전의 절실함이 ‘논리’보다는 ‘가슴’으로 깊이 느껴진다. PM 5:00/ 최일선 업무현장 국도유지사무소 방문, 직원들 격려 행사를 마치고 곧장 건설교통부에서 최일선 현장을 책임지고 있는 곳 중의 하나인 익산지방국토관리청의 광주 국도유지사무소를 찾았다. 국도의 상태를 언제나 최상으로 유지하기 위해 사시사철 현장을 누비는 직원들이 근무하는 곳이다. 눈비, 안개, 추위와 더위도 마다않고 24시간 대기하면서 마음 졸이며, 불의의 사고나 도로 파손 등으로 피해가 발생하면 즉시 출동하는 해결사들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고생하는 소중한 사람들이지만 장관으로서 일일이 찾아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보니 잠시나마 들러서 따뜻한 마음을 나누고 격려하고자 했다. 그분들은 아마도 나를 만나는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장관을 접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무슨 얘기를 할까 궁금해 할 것이다. 어떤 얘기를 하면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차 안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국도를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눈비, 안개, 추위와 더위도 마다않고 24시간 대기하는 직원들을 찾아 격려했다. 일일이 악수를 나누면서 따뜻한 마음을 교감했다. “본부는 정책을 입안하고, 지방국토관리청은 건설을 한다. 그리고 여러분은 유지보수를 하는데 기상이변과 예기치 않은 재해 등으로 고생이 많다”는 요지로 운을 뗀 후 “공무원이 불편하면 국민이 편안하고, 공무원이 편안하면 국민이 힘들다는 점을 항상 기억해 달라”는 점을 당부했다. “근무처가 어디냐고 물으면 자랑스럽게 건설교통부에 다닌다고 말할 수 있는 청렴부처를 만들어가자”는 말로 인사말을 마쳤다. 광주국도유지사무소를 장관이 방문한 것은 내가 처음이란다. 전임 장관들도 겨를이 없어 여기까지 발길이 닿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뜻 깊었을까. 활짝 웃는 얼굴과 환호성에서 환대의 열기가 느껴진다. 일일이 악수를 나누었다. 전달되는 체감 온도가 더욱 따스했다. 적은 격려금이라도 주고 싶은데 요즘 장관에게는 그럴 돈이 없다. 짧은 시간이나마 직원들과 함께 하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PM 6:10/ 광주공항 구내식당에서 간부들 격려 만찬, 그리고 상경 다시 광주 공항. 마음은 국도유지사무소 전원을 번듯한 식사에 초청해 격려해주고 싶은데 여건이 허락하지 않는다. 대신 간부들만을 초청해 공항 구내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7시 정각 비행기 탑승이니 깊은 얘기를 나눌 수 없는 짧은 시간이다. 참 바쁜 하루였다. 장관의 하루를 궁금해 하는 분들과 공유하고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기내에서 오늘 일정의 요점을 수첩에 메모하다 마지막 무렵 잠깐 잠이 들었던가 보다. 서울에 도착했다는 안내 방송에 눈을 떴다. PM 7:55 / 귀가, 재택근무 시작! 김포공항을 벗어나 곧장 집으로 향했다. 저녁에 다른 약속을 잡지 않기를 잘했다. 금요일 저녁, 공항에서 집에 가는 올림픽도로가 유난히 막힌다. 9시 갓 넘어 집에 도착. TV 뉴스를 시청했다. 오늘 발표했던 지방투기과열지구 해제가 보도되었다. 사실 위주로 보도가 되어 고마웠다. 주택시장 안정과 지방 건설업 침체 극복이라는 두 과제 사이에서 내린 현실적 선택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하는 것 같다. 하지만 건설업계에서는 여전히 투기과열지구 해제보다는 세제와 금융거래 규제를 완화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내일 아침 조간신문에서는 어떻게 보도될지…. 컴퓨터를 켜서 온라인으로 뉴스들을 검색해본다. 일부 신문들이 방송보다는 더 다양한 시각들을 표출하고 있고 비판적인 편이지만, 이 정도면 괜찮은 편이다. 밤이 늦었지만 마지막으로 건설교통부 인트라넷에 접속했다. 낮동안에는 바쁜 외부 일정으로 인해 따로 시간을 내기가 어렵기 때문에 문서처리는 주로 밤시간에 업무관리시스템을 이용해야 한다. 업무의 신속한 처리를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직원들이 정성들여 올린 문서를 한시라도 빨리 봐주는 것이 장관의 도리일 것이다. 겨우 하루 못 보았는데도 50여건의 문서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과거에는 사무실에서 대면 보고를 통해 업무를 처리했지만 이제는 옛말이 되었다. 모든 업무가 ‘온나라 국정관리시스템’을 통해 컴퓨터로 이루어지고 있어 직원들이 올린 문서들을 집에서 처리할 수 있다. 각각의 문서에는 직원들 각자의 의견과 처리한 시간들이 다 기재되어 있다. 한눈에 간부들과 직원들의 의견을 알 수 있다. 직원들 입장에서도 장관의 의견을 직급에 상관없이 누구나, 아무 때나 볼 수 있다. 업무 처리가 이렇게 투명하게 이루어지니 조작이나 편법은 있을 수가 없다. 이른 새벽에 잠이 깨어서 일을 처리했던 적도 있다. 직원들이 다음날 그 문서를 열어보고 장관이 새벽 3시에 결재한 것을 알고는 “우리 장관은 잠도 안자고 일한다”는 말들이 회자되었다고 한다. 참여정부에는 유달리 ‘OO시스템’들이 많다. 각종 업무들을 정보화했기 때문이다. 이 시스템들은 여러 곳에 흩어진 정보를 수평적으로 공유하여 조직 구성원들이 더 넓은 커뮤니케이션의 바다에서 만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강력한 효과를 낸다. 지식정보사회와 조직사회에서 정보는 권력이고 정보가 불균형하게 흐르거나 왜곡되면 특권과 비리가 만들어진다. 그렇게 본다면 정보의 흐름을 투명하고 평등하게 바꾸어주는 이 시스템들이야말로 앞으로 정부 혁신이 지속되기 위해 반드시 갖추어져야 할 필수 인프라인 셈이다. PM 11:50 / 막중한 책임감에 언제나 긴장… 50여건의 서류를 처리하다 보니 어느새 자정이 다 되었다. 이제 잠을 청해야겠다. 인생의 반려자, 아내 곁은 고향처럼 아늑해서 좋다. 육지 길, 하늘 길을 오가며 오늘 하루 동안 이동한 거리를 모두 합하면 얼마나 될까 재미있는 상상을 해본다. 만난 사람들도 참 다양했다. 막 잠이 들려고 하는데 전화벨 소리가 들린다. 가슴이 철렁한다. 이 시간 사무실에서 전화가 오면 뭔가 건설교통 관련 대형사고가 터졌을 가능성이 높다. 한밤중 전화에는 걱정부터 앞선다. 다행히 다른 전화였다. 일정이 바쁜 것은 피곤하지만 열심히 뛰어다니면서 소화하면 된다. 그런데 문제는 내 힘으로 제어할 수 없고 예측하기 어려운 돌발 사고이다. “하늘에는 예측할 수 없는 비바람이 있고, 땅 위에는 예측할 수 없는 재난이 있다”고 선인들은 말했지만 이러한 사고들을 줄이기 위해서는 예방시스템을 보강하고 더욱 긴장하는 길밖에 없다. 취임 강의 때 직원들에게 자신감과 적극성을 고취하기 위해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니 앞으로 좋은 일만 있을 것”이라고 큰소리쳤는데 제발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마음속으로 간절히 염원해본다. 이용섭 건설교통부 장관 국정브리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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