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천님의 글에 대한 답변입니다.
머슴-주인-개의 공동체
김갑천(서울대학교 정치학박사, 전 네덜란드 IIAS/국립라이덴대학교 한국학교수)
글쓴이는 외국 배우 중에서는 노년의 숀 코너리를 좋아한다. 냉전 시대의 냄새를 물씬 풍기는 007로 날리던, 좀 느끼한 느낌의 코너리보다는, 늙은 그에게서 연기의 깊이와 따뜻하고 편안한 인간미를 느낀다. 그가 해리슨 포드와 출연한 「인디아나 존스: 최후의 성전」을 볼 때는, 나도 언젠가 나의 아들과 더불어 그들과 같은 모험을 해보고 싶기도 했다.
꽤 오래전의 영화여서 지금 제목이 생각나지 않지만, 역시 노년의 코너리가 퇴역을 앞둔 특수부대 출신 중령으로 출연한 군범죄수사물 영화를 본 적이 있다. 거기서 그가 이런 말을 한 기억이 난다: “군인은 집 지키는 개다. 그 개는 사납지 않으면 더 이상 개가 아니야.”
이 한 마디는, 정규군(육군하사) 출신으로 보병의 전술에 대해 연구를 한 경험이 있는 글쓴이가 듣기에, 군인의 정체성을 명쾌하게 밝혀주는, 참으로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다. 그래서 작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받지만, 경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받지 못한다. 군인 또는 개는 국민 혹은 주인이 잠들어 있을 때에도 시퍼런 눈으로 늘 깨어 있어야 한다. 공공성을 띤 기관, 즉 공기(公器)로서의 언론의 존재의미도 바로 ‘개’의 연장선상에 있다.
완도군이라는 이 공동체에서 우리 주민은 주인이다. 그리고 다소 실례되는 표현이기는 하지만, 군청의 관료는 일을 도맡아하는 머슴, 군의원들은 집지키는 개에 비유할 수 있다. 머슴들은 주인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경영의 사명을 띠고 있으며, 개들은 목숨을 걸고 주인의 재산과 이익을 지켜내야 한다. 좀 거칠게 말하면, 이와 같은 머슴-주인-개의 연대가 바로 공동체이다.
그러므로 머슴과 개가 각자의 역할을 다하는 공동체는 반드시 번영하고 융성한다. 머슴인 관료들은 경영의 성공을 위한 정책의 개발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나아가 민선 시대에 있어서 지방 관료들의 수장은, 중앙정부로부터 매우 독립적인 CEO로서 그 권한이 막강한 만큼 그 책임도 무한대이다. 이들 수장들은 선출직의 지위에 있는 한, 그들의 행위의 대부분이 사적인 것일 수 없으며, 원칙적으로 모두 감시되어야 할 대상이다.
이러한 지방정부 수장들의 위상을 반영한 듯, 국회의원직보다 군수직이 더 선호되는 요즈음의 정치현실을 보면, 상시적으로 지방정부 수장들의 권한을 제어하고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구인 지방의원들의 역할의 중요성은 너무도 크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솔직히 가슴에 손을 얹고 한번 자문해보자: “바로 지금 군청의 관료들이 주민인 내 말을 무서워할까? 주민인 나의 말이 그들에게 어떤 정치적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가?”
아마,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주민은 별로 없을 것이다. 선거가 일단 끝나면 다음 4년 후의 선거가 다가올 때까지, 사실 우리 주민이 갖고 있는 수단은 거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곁에 있는 ‘개’를 잘 거둬야 한다. 그래서 이 개들의 경계 활동이 좀 거칠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주인을 위한 그들의 충정으로 받아들이고 그들의 사기를 저하시켜서는 안 된다. 군인도 개도 사기를 먹고 산다.
우리 주변에는 장래의 선출직을 목표로 하고 있는 인사들이 상당수 있다. 이들의 교육을 위해서도 ‘사나운 개’들은 필요하다. 그렇게 자세히 감시하고 검증하는데, 선출직을 목표로 하는 그 누가 떨지 않고 근신하지 않겠는가.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들은 공인으로서의 삶을 조금씩 맛보면서 변화해 갈 것이다. 이렇게만 된다면 우리들 ‘주인’으로서는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훗날에도 날마다 깊은 잠을 잘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머슴’과 ‘개’는 서로의 존재이유를 인정하는 공동운명체의 구성원인 이상, 서로의 직무수행 과정에서 불필요하게 감정을 개입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일단 관료의 입장에서는, 군의원의 직무의 성격과 범위에 대한 깊고 너그러운 이해가 있어야 할 것이다. 군의원의 임무의 본질은 비판과 감시이다. 물론 대안도 충분히 제시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것은 현재 군의원이 동원할 수 있는 자원으로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군의원의 편에서는, 모든 비판적 발언에 앞서 먼저 관료의 직무수행 성과나 장점을 인정하고 그것을 드러내주는 방식을 채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글쓴이의 경험으로 보면, 모든 생산적인 논쟁은 먼저 상대의 장점을 말하고 이어서 비판을 말하는 데서 싹튼다고 감히 단언할 수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