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쓰래서 막 썼는데… 앞으론 뭘로 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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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선일보 작성일09-07-07 09:39 조회3,05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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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예산의 60% 이상을 상반기에 조기 집행하라는 중앙정부의 방침 때문에 전국의 도로 공사가 예년에 비해 부쩍 늘었다. 3일 서울 용산구에 있는 지하도 공사 현장에 안내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정경열 기자 krchung@chosun.com |
재정 조기집행 실태와 문제점
정부, 경기 살리기만 독려 불필요한 지출, 낭비도…
지자체 세수(稅收)는 형편없어 재정악화 '부메랑' 예고
지식경제부 산하 우정사업본부는 지난 3월 초 2310대의 현금 입·출금기(ATM/CDP)를 발주했다. 5만원권 처리가 가능한 기계를 전국 우체국에 깔기 위해서다. 납기는 6월 15일로 정해졌다. 경제 회복을 위해 상반기가 끝나는 6월까지 예산을 조기(早期) 집행하겠다는 정부 방침 때문이다.
ATM 업체 4곳은 납품기한이 너무 촉박해 1개 업체가 다 납품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우정사업본부가 발주한 총 362억원 사업을 사이좋게 나눠 가졌다. 업체들은 ATM(현금 입·출금기)을 평균 3300만원, CDP(현금지급기)를 1100만원에 납품했다. 예년보다 30% 안팎 비싼 가격이다. 담합 의혹이 일자 공정거래위원회는 ATM 업계 조사에 착수했다. 공정위 조사가 시작되자 ATM 가격은 2200만원까지 떨어졌다. 결국 재정 조기집행으로 ATM 1대당 1100만원씩, 총 50억원 정도의 혈세(血稅)가 낭비된 셈이다.
정부는 올해 예산의 60.6%를 상반기에 조기 집행했다고 밝혔다. 예산 조기집행이 경기급락의 충격을 완화시켰다는 평가가 많다. 하지만 일선 시·군이나 행정기관의 조기집행 실태를 들여다보면 일정에 맞추고 실적을 높이기 위해 예산을 낭비한 사례가 적지 않다는 비판도 나온다.
◆1년 예산의 10%를 단 2일 만에 집행
경기 고양시의 올해 예산은 1조1700억원이다. 그런데 지난달 29~30일 고양시는 이 중 1140억원을 집행했다. 한 해 전체 예산의 9.7%를 이틀 동안 쓴 것이다. 건설사업소는 공사를 빨리 시작하고, 복지 담당 부서는 예년 7월에 주던 복지기관보조금을 6월 말에 앞당겨 줬다.
고양시 A과장은 "예산을 빨리 쓰지 않는 과장들은 연말 성과급에서 페널티(불이익)를 준다는 내부 지침 때문에 각 과에서 별의별 아이디어를 다 짜냈다"고 귀띔했다.
정부가 예산 조기집행 계획을 발표한 것은 지난해 말이다. 따라서 일찍부터 계획을 세워서 차근차근 집행할 수도 있었을 텐데 고양시는 늑장을 부리다 상반기 마감 시한에 '퍼내기식 집행'을 했다는 지적이다.
◆경기부양 효과 없는 정책 남발
경기 광명시는 전기요금과 수돗물 값, 전화요금 등 공공요금의 사용료를 10월분까지 미리 내도록 각 부서에 지시했다. 이렇게 공공요금까지 '밀어내기' 하는 방식으로 광명시는 6월 마지막 이틀 동안 올해 예산의 7%(270억원)를 썼다. 광명시 B과장은 "공공요금만 미리 내도 예산 4억~5억원을 미리 집행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공공요금을 미리 내는 것이 민간 소비나 고용 창출에 기여하는 정도는 극히 낮을 것이라고 이러한 집행방식의 효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조기집행 명목으로 불필요한 숙원사업을 해결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한국마사회는 4월 말부터 연수원 설립을 검토하고 있다. 이사회에서 직원 교육·세미나를 위한 연수원을 신축하면 예산을 빨리 쓸 수 있다는 의견이 나왔기 때문이다.
◆무리한 지출 확대에 지방 빚 부담 늘어
전라북도는 재정 조기집행을 위해 지난 4월 230억원 규모의 지방채를 발행하고, 900억원을 농협으로부터 단기 차입했다. 900억원을 보름 동안 빌리는 데 이자만 1억원 남짓 줬다. 6월 말엔 다시 700억원을 단기 차입했다. 재정 조기집행을 위해 자금을 차입하다 보니 이자 부담이 적지 않다.
지출이 늘어나면 수입도 증가해야 지방재정이 균형을 잡을 수 있다. 하지만 경기침체로 지방 세수는 잘 걷히지 않고 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 3월까지의 지방세 징수액은 7조2232억원으로 목표치의 15.3%에 불과하다. 재정상황이 악화되면서 하반기 살림이 걱정되자 반발하는 지방자치단체가 생겨나고 있다. 최근 충북 시·군 부단체장 회의에서는 "중앙정부 정책을 따르다 재정이 악화됐으니 중앙정부가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김정훈 기자 runt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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