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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규의 ‘직필직론’]대통령 위에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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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동아닷컴 작성일13-01-17 03:03 조회2,81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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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 대통령보다 오래간다.”

관료들이 가슴 속에 새기는 금언(金言)이라고 미국 하버드대의 토머스 패터슨 교수는 지적한다.0

정권의 생존은 관료 사회의 생존과는 큰 상관이 없다. 공무원들은 새 대통령이 취임하면 그때부터 대통령이 임기가 끝나 떠날 때만을 기다린다. 대통령은 왔다가 가는 사람이지만 자신들은 오래 오래 자리를 지킬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대통령의 이름을 붙여 누구누구의 정부라고 하지만 실제 주인은 자기들이라는 것이다. 정년에 의해 직업의 안정성이 확보되어 있으면서 시장질서에 의해 거의 통제나 단련을 받지 않는 것이 관료 조직이다. 관료 사회는 타성과 이기주의로 정권의 부침에 관계없이 생존한다.





그래서 막강한 대통령을 일컫던 ‘제왕적(Imperial) 대통령’은 ‘위험에 빠진(Imperiled) 대통령’이 되어 버렸다. 통제하기 힘든 막강한 관료 조직 때문이다. ‘위험에 빠진 대통령’이란 말을 처음 사용한 제럴드 포드 미국 대통령은 “거대한 연방 관료 체제에 대한 통제를 유지할 수 없는 백악관의 무능력이 대통령직의 가장 큰 약점이다. 행정부의 관리들에게 내린 명령이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휴지 조각이 되어 버리는 것을 아는 것보다 대통령에게 더 좌절을 느끼게 하는 일은 없다”라고 말했다. 오죽 공무원들에게 시달렸으면 대통령이 자신의 무기력을 그리 절실하게 고백했을까.

빌 클린턴 대통령 때 앨 고어 부통령이 추진했던 ‘정부의 재창조’도 비대하고 오만한 관료 조직을 다루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앞으로 10년 동안 30억 달러를 절약하기 위한 야심 찬 정부 개혁을 다짐하고 있다. 그러나 “위험에 빠진 여러 대통령이 시도했으나 누구도 성공하지 못한 계획”이란 냉소를 받고 있다.

그만큼 관료 조직은 골칫덩어리다. 미국의 연방 정부는 해마다 4000여 개의 새로운 규제를 국민에게 부과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 미국의 공무원들은 어떤 평가를 받을까. 스위스에 있는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2012∼2013년 글로벌 경쟁력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144개국 가운데 7위의 경쟁력을 갖춘 나라이다. 이러한 고도의 경쟁력을 이루는 여러 요소 가운데 정부의 효율성, 부패 정도, 투명성, 규제 등을 평가한 ‘제도’ 부분은 41위에 지나지 않았다. 관료들이 국가 경쟁력의 적지 않은 걸림돌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독일에 있는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2012년 공공 부문 부패 지수’에 따르면 미국은 174개국 가운데 19위였다. 관료주의가 다분하나 높은 청렴도를 보이는 것이 미국의 공무원들이라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공무원들은? 우리나라의 글로벌 경쟁력은 세계 19위. 그러나 공무원들의 의식, 행태 등과 관련한 ‘제도’는 62위이다. ‘사회간접자본’이 9위, ‘보건과 초등교육’이 11위인 것에 비해 너무 뒤떨어진 순위이다. ‘국제투명성기구’의 정부 등 공공 부문 부패 지수는 45위. 이 순위는 10여 년 계속 40위권에서 맴돌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가운데 한국보다 더 부패한 나라는 헝가리, 체코, 터키, 이탈리아, 그리스 등 6개국뿐이다. 2012년 홍콩의 컨설팅 회사가 발표한 아시아 국가들의 관료제 평가에서 한국은 12개국 가운데 6위였다. 인도가 10점 만점에 9.21로 최악의 관료제국으로 꼽혔으며 싱가포르가 2.25점으로 가장 효율성이 높은 정부로 평가되었다. 홍콩, 타이, 타이완, 일본이 우리나라(5.87점)를 앞섰다.

이처럼 한국의 공무원들에 대한 세계의 평가는 상당히 부정적이다. 세계 10대 경제 대국, 런던 올림픽 5위의 스포츠 대국인 한국 공무원의 위상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한마디로 부패하고 효율성이 높지 않다는 것이다. 국민의 체감 지수도 외국의 평가와 다르지 않다. 천문학적 돈을 들인 최첨단 빌딩의 널찍한 사무실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으나 뇌물을 받고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낡은 의식과 행태는 여전하다.

필자는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행정기관에 정보 공개를 청구한 뒤 정보를 얻기까지 과정을 단계별로 블로그에 올리도록 했다. 신청을 시작하면서부터 학생들의 한숨이 깊어졌고, 끝내는 분노로 변했다. 수업에 참여한 학생 대부분이 공무원의 무성의와 불친절, 신청 포기 유도, 부처 간 떠넘기기, 합당한 이유 없는 지체와 비공개, 부실한 자료 공개 등을 지적하며 정보 공개 제도와 공무원들의 행태에 깊은 실망과 불신을 나타냈다. 학생들은 관료주의의 폐해를 절감했다.

미국의 대통령들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깨끗하고 효율성이 높은 공무원들도 제대로 다루기가 버거워 대통령직이 위험에 빠졌다고 한탄했다. 그러니 한국 대통령들의 고충을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임기 초기에 강력한 개혁 정치를 추구했다. 관료 사회의 오래 눌어붙은 부정부패를 뿌리 뽑기 위해 공직 사회 전반에 걸쳐 사정을 실시했다. 부작용은 바로 나타났다. 공무원들이 일을 하지 않았다. 당시 오인환 공보처 장관은 이 같은 모습을 ‘복지부동(伏地不動)’이라고 표현했다. 공무원들이 개구리처럼 땅에 납작 엎드려 사정의 칼바람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뜻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 대불산업단지의 전봇대를 관료주의의 상징처럼 지적하며 그것을 뽑아냈다고 자랑했다. 하지만 그의 임기 동안 전국의 ‘관료주의 전봇대’가 웬만큼이라도 뽑아졌다고 믿는 국민은 별로 없을 것이다.

미국과는 달리 한국의 대통령은 5년 단임이 아닌가. 아무리 강한 대통령일지라도 임기 5년 내내 개혁을 펼칠 수 없다는 것을 공무원들은 잘 안다. 일시 바람이 지나간 뒤 다시 털고 일어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한다. 정부의 주인은 자기들이라고 생각하니 답답할 것이 없다. 이번 정권에서 못 한 일 다음 정권에서 하면 되는 것이다. 이념이나 소신을 저버린 채 ‘영혼이 없는 기능인’을 자처하며 정권마다 장관이나 수석비서관 자리를 노리는 일부 공직자들만 애가 탈 뿐이다.

새 정부 인수위도 행정 조직 개편을 발표했다. 그러나 정부의 겉모습만이 아니라 어떻게 속까지 바꿀 것인가의 방향과 방법론도 곧 제시되어야 한다. 조직 개편이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경우가 되지 않으려면 공무원들의 의식과 행태가 바뀌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새 대통령에게 관료사회는 거대한 도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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