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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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게 작성일22-06-13 15:01 조회3,22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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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노무현 대통령,
노 대통령 재임시절 나는 30대 초중반이었다. 아직 서툰 나이라서 희망을 품기는 했지만 민중의 구원자 같은 느낌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나랑 비슷한 연배에 비슷한 체험을 하며 인생을 살아온 부류(?)들은 노 대통령을 지지하고 주변에 투표를 권유하긴 했지만 당선 이후 행정에 대해서 높은 점수를 주지는 않는다.
취임 후 1년이 지나지 않아 희망 자체는 접었고 남은 임기를 잘 마치기를, 한 사람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는 것은 난망한 노릇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나 할까.
인간으로서 노 대통령의 삶에 대해서는 여전히 많이 공감한다. 하지만 그걸 신격화/우상화하는 다수 대중의 모습에 대해서는 썩 달갑지가 않다.
노 대통령 서거 당시 전국에서 추모 열기가 일었다. 광주에 살던 시절 같이 마실을 나갔던 친구가 분향소가 보이길래 갑자기 "야 우리도 절하자" 그러면서 내 팔을 이끈다.
개방형 분향소에는 주로 20-40대 여성들이 큰 절을 하고 있었고 그 분위기에 휩쓸려 친구도 그런 행동을 보인 것 같았다. 나는 내심 탐탁치 않았으나 친구 마음을 맞춰주려 같이 절을 했다.
하지만 그때도 그 썩을 놈의 이성이 작동했다.
'이거 뭔가 좀 그런데? 조선조 백성도 아니고. 갑자기 주한미군 사령관이 말했다는 "한국 사람들은 레밍과 같아서"라는 말이 떠오르네'.
일제 시절 패망 이후 미군 진주 이전 상황을 책임졌던 조선총독부가 기록한 문건에도 동일하게 "조선인들은 우우하며 한쪽이 움직이면 다들 따라서 하니까 무섭다"는 말이 나온다.
내가 지금 나 아닌 한국 사람들을 피사체로 놓고서 쓰는 말이 아니다. 한국이 아니라 인류라는 말로 바꾸어 써도된다.
서양 인종(?)은 테스토스테론이 동양인(?)에 비해 과다 분비된다. 장단이 다 있다. 일단 근력이 좋고 호전성과 지배욕이 강하다. 단점이야 익히들 아는 것.
서양인이 대가리가 좋다? 대가리 좋은 이들이 있을 뿐이다. 동양 역시 마찬가지.
그놈의 '동일시' 기제가 인간사에서 그토록 많은 문제를 이끌어낸다.
이놈의 동일시 기제는 대기업과 기득권이 대중을 조종하는 무기이기도 하다. 전두엽 작동 회로 차단하고 변연계만 작동하게 한다고 할까?
이성은 거기서 어떤 추악함, 더러움을 느낀다. 그렇다고 이성이 우월하다거나 전부인 것은 아니다. 감성이 작동해야 할 때가 있고 이성이 작동해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니까.
나는 노 전 대통령 서거 당시 친구, 통곡하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에서 이질감을 느꼈다. 그 이질감은 나는 노 대통령을 구원자로 바라보지 않는데 그들은 신적인 존재로 받아들인다는 느낌에서였다.
인간으로서의 고뇌와 고통으로 점철된 노 전 대통령의 삶은 비극이다. 변연계가 우세한 친구와 당시 추모객들은 어쩌면 그 비극에서 자신과 노 전 대통령을 동일시했을 것이다.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풍경이다.
하지만 나는 거기서 노 전 대통령이 그들보다 '애초'에 우월한 존재로 태어났다고 인정하는 그들의 어리석음을 보았다. 나처럼 설익은 이성이 발달한 부류는 신분제 사회 조선의 풍경을 다시 그들에게서 보았다.
'데이비드 카퍼필드의 인생 역정'. 영국 작가 디킨즈가 쓴 소설.
도입부에 너무나도 당연한 그 이야기가 나온다. 디킨즈의 내심과도 같은.
'태어난 아이가 자기 삶의 주인공일지 아닐지....'
디킨즈는 물결에 휩쓸리며 삶을 헤쳐나갔고 그의 소설 속에선 간간히 그리고 적잖이 이성이 작동하는 문구가 등장한다.
그 문구를 빌자면 자기 삶의 주인은 남 탓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고 노무현의 지지자들은 남 탓을 많이 하드라. 고 노무현은 남탓을 하지 말고 개척하라 하지 않았나? 구세주를 찾지 말라고.
그들 눈에야 노무현 님을 지칭할 때는이름을 피하고 휘를 쓰며 극존칭을 써야 맞을텐데 나같은 부류는 필시 노무현을 비하하는 존재일 것이다.
나는 살면서 험한 표현을 많이 썼다. 물론 내 이름자를 밝히고서.
창녀, 양아치, 밑바닥 쌍것들, 어차피 처지는 부류들, 개돼재들.
그 모든 비하 표현들은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있다.
어린 존재들. 정확히는 '기다려줘야 하는 존재들'
그만큼 그들을 비하했다면 내 이면에 그만큼의 애정이 자리잡고 있기를. '여전히'.
내가 지금 써내려가는 이야기 속에 피사체로 자리한 이들이 마냥 나보다 못하냐 하면 그건 아니다. 다른 시공에서 다른 주제로는 내가 명함도 못 내밀 실력이 있음을 내 체험을 통해 알고 있다.
어차피 작중 화자란 신적인 존재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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