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 가리포진 복원도 빨리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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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동헌복원운동 작성일23-06-06 22:57 조회3,436회 댓글4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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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좌수영성 사적 복원, 여수의 정체성 확립 출발점
역사·학술적 가치 빼어나...지속가능 여수관광 활성화 위해서도
여사연 심포지움, “조선 수군 총사령부로서 역사적 가치 재조명돼야”
송은일 교수, “성문루·관아 건물·도로 영역 나눠 부분 복원 가능”
1일 여수지역사회연구소가 '전라좌수영성 복원 당위성 확립'을 위한 전문가 심포지움을 개최해 관심을 모았다.
여수에서는 ‘호국의 도시, 여수’라는 역사적 정체성 확립을 위해 수년전부터 ‘전라좌수영성 복원’을 외쳐왔다.
정치권 선거철마다 주요 공약으로 제시했고, 민간 영역에서도 역사적 정체성 회복과 관광컨텐츠로서 활용을 위한 좌수영성 복원을 주장해 왔다.
최근에는 국보 진남관의 해체 복원과 함께 좌수영성지 내 동헌 복원 등의 작업이 진행중이다.
하지만, 여전히 좌수영성의 문화재 등록과 좌수영성 복원은 요원한 과제로 남아 있다.
이같은 현실에서 여수지역사회연구소는 지난 1일 ‘전라좌수영의 사적 복원과 당위성’을 공론화하기 위한 심포지움을 개최해 관심을 모았다.
이를 계기로 전라좌수영의 역사적 가치 재조명하고, 전라좌수영 복원의 당위성 근거 마련, 여수지역 호국 관련 유적 발굴과 콘텐츠 개발·활용방안을 모색하겠다는 취지다.
전라좌수영은 조선 성종 10년(1479년)에 설치되어 1895년 폐진될 때까지 416년 동안 왜적으로부터 남해안의 중심지역을 방어했던 수군 진지다.
특히 임진왜란 당시, 전라좌수영은 지역민의 힘으로 병기, 병참, 병력 등 전투 수행의 모든 물자를 자체 조달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끈 호국의 성지였다.
하지만, 구한말 전라좌수영 폐군과 일제가 강제 침탈 후 자행한 1930년대 민족문화 말살정책으로 전라좌수영의 성벽을 비롯해 유적 대부분이 사라져 전라좌수영 사적지 복원이 절실한 실정이다.
현실은 이같은 절실한 요구를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이날 심포지움에서는 이같은 전라좌수영의 역사적 가치 조명과 좌수영성 복원을 위한 그간의 노력, 향후 사적 지정과 복원까지 이끌어 낼 전문가들의 로드맵이 제시됐다.
전문가들의 발제 내용을 재구성함으로써 전라좌수영성 복원의 당위성을 공론화하고자 한다.
“전라좌수영, 조선시대 최초의 삼도수군 총사령부”
먼저 송은일 전남대 이순신해양문화연구소 교수는 ‘전라좌수영의 역사와 복원의 당위성’을 주제로 발제에 나섰다.
전라좌수영은 1479년(성종 10)에 현 여수시 군자동 일원에 설치됐다.
설치 당시 전라좌수영은 강진·장흥·흥양·보성·낙안·순천·광양으로 이어지는 전라도 남해안 동부 7군현의 8진포를 관하에 거느렸다.
이후 그런데 1521년(중종 16)경에 이르러서 상당히 변화된 모습을 보였다. 강진현 완도에 가리포진이 설치되어 전라우수영에 여수 돌산진을 혁파하고 대신 방답진을 설치하여 전라좌수영에 배속시켰던 것이 그것이다.
전라좌수영의 편제는 중종·명종대 일대 변화를 맞이한 이후 임진왜란 직전 또다시 변화된 모습이 나타난다. 즉 장흥부에 존재했었던 회령포진이 전라좌수영 관할하에서 제외된 것이다.
그리하여 당시 전라좌수영은 흥양·보성·낙안·순천·광양 등 5군현과 사도·방답·여도·발포녹도 등 5진포만을 거느리게 됐다.
임진왜란 중이던 1593년(선조 26년) 8월 전라좌수사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영사를 겸직함에 따라 전라좌수영은 조선 수군의 총사령부가 되었다.
전라좌수영은 조선시대 400여 년을 넘게 전라도 최일선 해양 방어를 책임졌던 수군사령부였다. 특히 임란시에는 위기에 빠진 국가를 구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임진왜란이 발발한 다음 해인 1593년부터 7년 전쟁이 종식되었던 직후 1601년까지 조선시대 최초의 삼도수군 총사령부로써 조선 수군을 총괄하였다.
송 교수는 “전라좌수영은 위상과 활약적인 측면에서 조선시대 가장 으뜸가는 수군사령부였다고 할 수 있거니와 따라서 역사적으로나 학술적으로 그 가치가 매우 높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전라좌수영을 문화재로 지정하고 복원을 해야하는 것은 당연하면서도 시급하다. 전라좌수영 복원 등에 대한 당위성은 여수지역의 지속가능한 관광활성화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현실 고려한 부분 복원 추진돼야”
송 교수는 본영 복원 범위에 대해 “조선시대 원형대로 해야 하겠지만 그보다는 현재 상황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본영 터와 기존에 형성되어 있는 시가지 상황을 고려했을 때 성문루 영역, 관아 건물 영역 일부, 도로 영역 일부 복원이 가능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성문루 영역의 경우 동문·서문·남문루 등이 있는데 현재 주변이 그다지 복잡하지 않으면서 복원에 따른 면적도 크게 차지하지 않기 때문에 사업비나 민원적 측면에서 상당히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설명이다.
관아 건물영역은 “현재 시가지 상황으로 보아 전체적인 복원은 어렵다”며 “일부 건물에 한정해 복원을 추진할 수밖에 없는데 복원 조건이 가장 유리한 동원 영역이다”고 밝혔다.
동헌은 현재 여수시에서 복원 계획을 수립해 추진중이다.
특히 도로와 관련해서는 “현재 관문서1길이 ‘호좌수영지영성도’에 나타난 동문에서 동원 사이 도로와 유사해 해당 도로 주변을 정비해 가칭 조선시대 ‘좌수영 거리’로 복원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전라좌수영을 복원할 경우 조선시대 외부에서 전라좌수영으로 진입하는 도로인 오림동 터미널 삼거리에서 전라좌수영 남문 또는 서문 터까지 복원이 이루어졌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송 교수에 따르면 “해당 도로는 전라좌수영이 설치된 이후 전라좌수사가 부임했던 도로이자, 전라좌수영 업무와 관련된 사람들, 수군 장졸들 그리고 전라좌수영 내 주민들이 사용했었던 도로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은 만큼 이 도로를 정비해 가칭 ‘전라좌수영 옛길’ 또는 ‘전라좌수사 부임길’로 명칭하고 문화의 거리로 활용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복원의 기본방향으로는 “복원의 범위가 부분적이다는 점과 상호 연계성을 가지는 공간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점, 복원에 대한 효용성, 복원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나 마찰 등을 불식시키기 위해서 민관이 함께 추진하는 협의 체제 구축, 철저한 역사적 고증과 지표발굴조사 등의 분석을 토대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역사보존에 대한 투자와 정치적 의지가 관건”
이같은 송 교수의 주제 발제에 대해 김병호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소장은 “여수시민이라면 누구나 조선시대 400여 년을 넘게 전라도 남해안 지역의 최일선에 존재했었던 수군사령부로서 나라를 지켜온 전라좌수영을 호국의 성지로 인식하고 있다”고 전제한 뒤 “전라좌수영의 중요성과 복원 방법, 절차에 대한 구체적 논의가 없어 혼란한 가운데 이번 송은일 교수의 발제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밝혔다.
김 소장은 “전라좌수영을 복원하는 것은 ‘역사보존’이라고 할 수 있다”며 “역사보존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문화재’ 혹은 ‘역사기념물’ 보존의 개념보다 더 광범위한 의미로 보면 될 것이다”며 전라좌수영 복원의 의미를 설명했다.
특히, “뜻있는 사회단체들과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보존의 논리에도 불구하고 건물이나 토지의 소유주에게 개발의 시대가 요구하는 합당한 법적 근거와 경제적인 보상책을 제시하지 못하면, 대부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하는 것이 도심 내 역사 유산들이 처한 현실이며 전라좌수영의 운명이기도 하다”며 좌수영성이 처한 현실을 우려했다.
그러면서 “역사보존에 대한 투자와 정치적인 의지가 성공적인 좌수영복원사업의 핵심이다”며 지자체와 정치권의 관심을 강조했다.
이어 “전라좌수영의 복원은 민족문화와 대중문화, 전통문화와 현대문화, 지역문화와 세계문화를 비교하고 나아가 인류학과 고고학 등과 관련된 지식 기반의 교육적 활용을 극대화하는 것이며, 전라좌수영 및 임란유적지와 전적지 등의 특색 및 경관 등 주변 환경을 조합하여 관광의 극대화를 꾀하는 것이다”며 복원의 당위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를 통해 “전라좌수영 및 전적지의 독특한 역사적 가치와 학술적 가치를 제공하여 지역문화 및 민족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유발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는 것.(여수지역 모 신문사)
→그나저나 가리포진은 언제 원형 복원할 생각이 있을까? 동헌을 빨리 복원할 생각도 성벽복원조차 없으니...... 고금진성도 복원중일지?
완도는 다른 인근 군지역들과 달리 1896년 이전까지 하도 군.현인적도 없는 만큼 지역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가리포진과 고금진이 조속히 복원하여 완도의 상징으로 만들어야 한다.